스터디/청소년 감정코칭

[감정코칭 09] ‘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역할을 하라!

BravongLife 2024. 6. 25.

 

아이들에게는 원초적인 불안감과 죄책감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불안감도 있고, 죄책감도 있습니다. 이는 하임 기트너 박사의 말입니다. 감정코칭을 할 때, 우리는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안감은 원초적인 불안감을 말합니다. 부모가 자신을 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말합니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이 배고픈 고통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고통이 버림받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말은 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런 말은 아이들에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농담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아이들은 또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자기가 뭔가 잘못한 것 같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분별력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잘잘못을 분별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자꾸 화를 낸다면, 자기 탓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죄책감에 빠지게 됩니다. 혹시 아시나요? 아이들이 자라는 시기에 부모님이 이혼하거나 사망하는 경우, 대부분의 아이들이 기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부모는 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

 

 

검사보다는 변호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하임 가트너 박사는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 주기 위해서 검사보다는 변호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검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죄를 찾아서 확인하고 벌을 주는 사람입니다. 직업적으로 이들이 나쁘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이들은 훌륭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모가 검사 같은 태도로 아이들을 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대신 부모는 아이들에게 변호사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와 한 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입장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아이와 다른 편이 아닙니다. 아이를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구속시키는 검사가 아닙니다. 아이와 한 편, 아이의 편에서 든든하게 변호해주는 변호사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감정코칭을 할 때의 우리의 태도이며, 위치입니다.

 

사랑하는 아이야! 나는 네 편이란다. 네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네 편이란다. 그러니 네 이야기를 말해주렴. 내가 너를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를 들려주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네 편이란다. 네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만약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쉽사리 검사가 되어서 그 아이를 몰아새웁니다. “왜 그랬어? 네가 잘못한 건 알고 있지?” 아이는 눈을 부릅뜨며, 부모를 처다 봅니다. “어디 눈을 그렇게 떠?!” 다그치는 부모 앞에 우리의 아이들은 아무 말도 않고,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립니다.

 

검사가 아닌 변호사가 된다면, 우리는 그 아이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왜 그렇게 화가 났니? 분명히 네가 화가 날만한 생황이었던 것 같은데, 네 입장을 이야기해 줄 수 있겠니?” 변호사의 역할을 할 때, 아이는 마음을 열게 됩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됩니다. 변화하게 됩니다.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아빠, 내 이야기를 먼저 들어줘!

 

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저에게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아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며, 진지하게 대화를 요청해 왔습니다. 아들의 요청은 한 가지였습니다. “아빠, 혼내기 전에 내 이야기를 한 번 들어봐줘,” 아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먼저 혼부터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자기가 잘못한 적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혼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아이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아빠가 노력하겠노라고 약속했지요. 어떤 일이 벌어지면,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검사처럼 아들의 죄를 지적하고, 처벌하려 했던 모습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아들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를 발동할 틈도 없이 검사가 된 아빠에게 부당한 처벌을 받아왔었습니다. 아들의 억울함이 참 마음 아팠습니다. 꾹 참고 아빠에게 대화를 요청한 아들이 오히려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억울함이 쌓이면, 수십 년 동안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한 평생을 살았던 이들의 억울함과도 같은 인생에 대한 배신감이 아이의 마음을 채우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어렸을 적, 제가 느꼈던 슬픔 하나가 문득 떠오릅니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누군가가 내 편에 서서 나의 마음을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어른이 되고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아픔을 내 아들에게 물려주고 있었던 것 같아 더 부끄럽습니다.

 

먼저 저부터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려 합니다. 아이들에게 검사가 되기보다 변호사가 되어 주기를 말입니다. 우리 같이 가면 어떻겠습니까? 검사 배지를 내려놓고, 변호사 배지를 답시다. 이왕이면 명함도 새로 하나 파면 좋겠네요. 우리 아이들의 변호사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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